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국민과 민족 평화통일위해 기도”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국민과 민족 평화통일위해 기도”
  • 뉴스인전북(News人 Jeonbuk)
  • 승인 2019.06.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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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여성·인권 운동가였던 고(故) 이희호 여사는 11일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장례위원회측이 밝혔다.

김성재 '김대중 평화센터' 상임이사는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이 여사의 유지를 발표했다.

김 이사는 이 여사가 "우리 국민께서 남편인 김대중 대통령과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여사가)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 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말씀했다"고 밝혔다.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6시고, 7시에 신촌 창천감리교회에서 장례예배 후 동교동 사저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앞선 10일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영원한 동반자인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 여사는 그간 노환으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병세가 악화돼 오후 11시37분 끝내 눈을 감았다.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와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당대 여성으로선 보기 힘든 인텔리였다.

대한여자청년단(YWCA) 총무 등 1세대 여성운동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 여사는 가난한 정치 재수생이었던 DJ와 만나 1962년 결혼한 뒤 지난 2009년 DJ가 서거할 때까지 47년간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를 살아왔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후 김 전 대통령 함께 정치적 고락을 함께 했다. 1972년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1973년 납치사건, 이후 가택연금과 투옥, 19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수감, 미국에서 귀국한 뒤 가택연금 등 정치적 고난을 함께 견뎌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구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네 번째 도전한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이 여사는 7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아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두고 '사랑의 친구들', '여성재단'을 만들어 활발한 대외 활동을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재직 중 2002년 3남 홍걸씨, 차남 홍업씨가 연달아 구속되면서 참담함을 맛봐야 했고, 퇴임 직후엔 '대북송금 특검'으로 또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김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서거하면서 47년에 걸친 김 전 대통령과의 부부생활은 마감했지만, 매년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행사를 개최하는 등 김 전 대통령의 유업을 잇기 위해 힘을 쏟았다.

2011년 12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는 등 햇볕정책의 계승을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 여사가 별세함에 따라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이어져왔던 '동교동 시대'도 완전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유족으로는 김홍업, 홍걸 2남이 있다. 장남인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이 여사에 앞서 지난 4월20일 별세했다. 아들 가운데 홍걸씨가 DJ와 결혼해 낳은 친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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